2012년 7월 22일 일요일

[야설] 새로운 행복

일 주일 전만 해도 난 너무나 조용한 여자였다.

10년을 넘게 같이 살아오면서 그이에게 이런 면이 있는 줄 몰랐다.
아니, 내게 이런 면이 있었는 지를 몰랐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갓 결혼했을 당시만 해도 우리는 그다지 성행위에 몰두한다거나 탐닉하는 부부가 아니었다.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했었고 둘 다 숫총각 숫처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성관계를 즐겼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행복한 신혼을 보내고 아이를 낳고 점차 권태기에 접어 들었었다.
서로에게 더 이상의 새로움을 발견하지도, 발견하려고도 하지 않는 권태로운 관계, 우리는 그렇게 다른 부부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평범하게 서로에게 지루함을 느껴가고 있었다.
그렇게 지루하면서도 평범한 생활을 하던 어느 날부터 내 남편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었다.
기념일도 안챙기던 그이가 난데없이 선물을 사오기도 하고 내가 차려놓은 밥상을 건성으로 먹던 모습과 달리 "맛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난 처음에는 그런 그이가 이해가 안됐었지만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는지 관계를 개선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었다.
그때부터 우리의 얼굴에는 다시금 웃음이 나타나기 시작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정확히 일 주일 전 우리는 정말 오랜만에 성관계를 가졌다.
그날은 왠지 의무가 아닌 기다림 같은 것이 있었다.
신혼은 아니지만 신혼 때의 그 어떤 기분이랄까.
정말 침대에서 머쓱해 하며 조금씩 접근해오는 그이가 왜 그렇게 귀엽고 반갑던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 일은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만족감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3일이 지난 밤의 일이다.

"자기야. 오늘은 뒤로 해보자."
남편은 삽입한 채로 내 목덜미에 입맞춤을 하며 말했다.

"응? 싫어. 난 이대로가 좋은데."
난 그이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지만 뒤로 하는 것은 썩 냉키지 않았었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그이는 내 목덜미에 침을 뭍히고 젖가슴을 만지며 내 아랫도리에 잔잔한 파도를 일으키다 천천히 내 몸을 옆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난 그이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 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약간의 두려움이랄까.
그런 기분이 들어서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뒤로 한다는 것에 대한 어색함보다는 두 번의 거절로 망쳐질 그이의 기분이 더욱 걱정되었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엎드린 자세로 그이의 침입을 기다리는 이상한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이가 잘 넣질 못하다가 내 아랫배 쪽에 베게를 놓고서야 그이의 물건이 내 몸 속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 때의 기분은 정말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그런 것이었다.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아무 것도 알 수도 없고 오로지 그이가 움직이는 대로만 느껴야하는 그런 이상한 기분.

하지만 그전까지 해왔던 그런 체위와는 정말로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그이는 뒤에서 날 유린해가며 젖가슴을 세게 움켜쥐기도 하고 등에 입맞춤을 하기도 했으며 양 쪽 엉덩이를 잡아 벌리기도 했다.
정말이지 그런 모든 행위들은 처음 겪어보는 것이었는데도 난 그이의 그런 행동을 말릴 생각도 들지 않았고 말릴 수도 없었다.

성관계를 마친 후 난 잠시 탈진 비슷한 상태가 되어 있었는데 정신을 차린 후에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땀인지 오줌인지 모를 무언가가 시트를 축축하게 적셔 놓았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그이는 언제나 날 뒤에서만 범했고 하루가 지나갈 때마다 그이의 애정표현은 점점 날 다른 여자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저녁 식사나 간식을 먹을 때면 난 두 손을 가지런히 놓은 채 그이가 먹여주는 대로 받아 먹어야 했고 아이가 집에 없을 때는 알몸으로 앞치마만 두른 채로 부엌에서 성관계를 하기도 했다.
또한 그이는 내가 오줌 싸는 모습을 보겠다며 화장실로 따라 들어와서 날 놀래키기도 했는데  결국 난 그이가 보는 앞에서 오줌을 눠야만 했다.
대신 닦아주겠다고 까지 했지만 그것만은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서 그냥 내가 닦았지만 뭐랄까 아이가 된 기분이랄까 그런 기분이 들었고 그런 기분이 싫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어제였다.

"자기야. 이리와봐."
남편은 침대 옆에 놓인 컴퓨터 모니터에서 눈을 때지 않고 날 불렀다.

".... ...."
난 그이가 침대로 와주기를 바랬지만 그래도 아무말 없이 그이가 있는 컴퓨터 쪽으로 갔다.

그이가 보고 있는 모니터 안에서는 고문당하는 여자 사진이 있었다.
온 몸을 밧줄로 묶인 채 침대에 엎드려 있는 여자.
개목걸이를 한 채로 무릎 꿇고 있는 여자.
알몸으로 거리에서 사람들의 조롱을 받고 있는 여자.
정말 내가 보기에는 고문 그 자체였다.

"어때. 귀엽지?"
".... ...."
난 그이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귀엽다니....

그이는 의자에서 일어나, 모니터에서 눈을 때지 못하는 내 뒤로 와서는 목에 입맞춤을 하면서 포옹을 했다.
그리고는 천천히 날 침대에 넘어뜨렸다.
그 날의 그이의 입맞춤은 전 날과 같았지만 전 날과 달랐다.
내가 보지 못하는 내 뒤에서 하는 그이의 모든 행동들이 전날과 같았지만 결코 전날과 같지 않았다.
그이에게서 애무를 받고 침입을 당하면서도 나의 머릿속에서는 모니터 속 그 여자들이 떠나가질 않았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이는 뒤에서 내 양 손목을 무언가로 묶고 있었다.

"뭐해?"
"쉿. 강아지는 말을 하는게 아니야."
그이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분명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손은 이미 다 묶여 있는 상태였다.

"내가 왜 강아진데. 내가 강아지면 자긴 뭔데."
"난 늑대지. 강아지를 잡아먹는 늑대."
그이와의 대화는 그것이 전부였다.

그이는 놀랄만큼 거칠게 날 다루었다.
온 몸에 멍이 들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날 정신없이 다루었고 목을 조르지는 않았지만 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그이에게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오늘 아침, 난 그이의 출근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 오래 잠든 적도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개운하게 잔 것 역시도 처음인 것 같다.

지금, 나는 눈가리개를 한 채 알몸으로 침대 위에 무릎을 꿇고 있다.
그이는 아이에게 잘 자라 라는 인사를 하기 위해 아이 방에 가 있다.
이 집에는 우리 가족 뿐이고 아이는 우리 방에 오지 않을테지만 난 두렵다.
남편과 함께 아이가 올까봐 혹은 남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다른 누군가가 올까봐.
전혀 가능성이 없는 일이지만 나는 그런 두려움을 떨칠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런 두려움이 이젠 더이상 낯설지도 거북하지도 않다.
이미, 그런 두려움과 긴장 속에서 남편이 안아주면 더 짜릿하고 더 흥분된다는 것을 나는 여러 차례 경험했기 때문이다.

"똑 똑."
'응? 남편이 방문을 노크한 적은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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