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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3일 목요일

루시드 드림, 자각몽 꾸는 방법


나는 내가 원하는 꿈을 꿀 수 있다고 말해도 친구들이 믿지 않던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나로써는 반갑기도 하지만 이게 뭐 별거인가 싶은 생각에 왜 이슈거리가 되는 건지 하는 의아함이 있다.

나는 5살 때 유령 꿈을 꾸고 나서부터 꿈에 대해서 약간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꿈의 내용을 스스로 만들어보고자 하는 욕구를 느낀 것이 초등학교 고학년 때인가 중학교 저학년 때였다.
한창 때는 꿈 중간에 '꿈을 꾸고 있다'라고 자각하는 수준을 넘어서 스스로 원하는 꿈을 꾸기 위해 잠에 들고 꿈을 꿈과 동시에 원하는 데로 꿈을 즐기는 수준까지는 갔었다.

하지만 인터넷에 떠도는 글들처럼 환경까지 100% 내가 원하는 데로 만들 수는 없었고 단지 내가 원하는 주제의 꿈을 꾸고 그 안에서 내가 원하는 데로 행동할 수는 있었다.
환경까지 원하는데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집중이 필요했는데 그 정도로 집중을 하게 되면 번번이 잠에서 깨버렸기 때문에 몇번의 실패 후에 그 이상의 욕심은 부리지 않았다.

재밋는 건 그 몇 번의 실패 과정에서 나는 '이 이상 집중하면 잠에서 깰 것 같다'라거나 '지금 잠에서 깰 것 같으니 긴장을 풀자'라는 식의 경험도 해보았다는 것이다.


루시드 드림, 자각몽을 꾸는 방법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첫 번째로 꿈 꾸기
꿈을 꾸기 위해서는 자신의 신체를 불편하게 만들면 된다.
어느 부위든지 상관 없는데 일단은 잠이 불편해지면 거의 꿈을 꾸게 된다.
단지 꿈을 기억하느냐 못하느냐, 꿈을 자각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일뿐 잠자리가 불편하면 거의 꿈은 꾼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일상 생활 속에서 몸이 지나치게 피곤해져 있으면 안된다.
내 경험상 몸이 피곤하면 꿈을 안 꾸거나 꾸더라도 자각하지 못하게 된다.
깨고 나서 기억은 가끔하지만 어떤 일로 인해서 몸이 피곤한 상태에서 꿈의 상태를 자각해 본적이 없고, 일단은 그런 욕구 자체를 느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두 번째로 꿈을 꾸면서 꿈임을 자각하기
이건 어떻게 설명을 못하겠다.
난 그냥 어느 순간에 우연히 꿈을 꾸면서 꿈임을 자각하기 시작했고 그런 상태로 지금까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꾼 꿈 모두에서 자각을 한 것은 아니다.
피곤하거나 귀찬거나 욕구가 없거나 한 적도 많았고 지금은 꿈 상태를 자각하더라도 그 안에서 무언가를 어떻게 해봐야지 하는 욕구 자체가 없어졌을 만큼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꿈 안에서 원하는 행동하기. 꿈 조절하기
이건 꿈 안에서 자신만의 어떤 행동을 정하면 된다.
나같은 경우에는 '절벽으로 뛰어내리기' 나 '벽으로 달려서 부딛히기' 를 많이 했다.
한창 꿈에 빠져 있었을 때 내가 꾸고 싶었던 꿈이 '날으는' 꿈이었다.
그래서 절벽에서 뛰어내리거나 벽을 뚫고 나가면 100% 하늘을 날 수 있었다.


루시드 드림, 자각몽을 많이 꾸면 유체이탈이 가능할까.

유체이탈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은 있었다.
꿈에서 내가 자는 방에서 자는 자세 그대로 다시 일어나서 내 방 벽을 뚫고 나가기 위해서 달렸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꿈을 꾸자마자 꿈이라는 것을 알 정도로 예민한 상태였는데도 잠깐동안 꿈인 줄 모를 정도로 꿈 속 내 방은 실제와 똑같았고 내 행동도 실제와 다르지 않았었다.

반대로 몸이 가라앉는 꿈을 꾸면서 잠에서 깬 적도 있었다.
그 느낌이 약간 섬뜩해서 한 동안은 그것이 유체이탈 경험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혼자 고민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유체이탈이 아니라고 단정짓고 있다.
방 벽을 뚫고 나갔을 때 나는 절벽으로 떨어졌고 그 높이는 내 집의 높이가 아니었다.
또한 절벽에서 떨어진 후의 내용은 그 전의 꿈들과 다르지 않았다.
몸이 가라앉는 느낌을 받은 것도 그 때 뿐이었고 실제 몸이 어떤 이유에서 아주 조금만 가라앉는 경험을 하게 되면 꿈에서도 똑같은 일들은 일어나고 그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경험을 몇 번 해봤다.

나는 자각몽이 좋다 나쁘다는 모르겠다.
현실도피나 현실에 무관심해지는 건 인정하면서도 그 재미 또한 솔솔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실과 꿈의 경계면에 위치해 있을 수만 있으면 명상 비슷한 경험도 해볼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나쁘기만 할까 하는 생각이 있다.

자각몽 꾸는 젊은층 증가, 방법은 두 가지...부작용도 '우려'(링크)

2012년 8월 6일 월요일

마누라를 안고 싶다

꿈을 꿨다.
가게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입을 약간 벌리고 있는 상태에서 자꾸 무언가가 내 이빨에 부딛히는 것이다.
애써 눈을 떠서 그것이 뭔지 확인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집사람의 장난일 것이 뻔했고 그것이 기분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 그것이 계속되고 좀 아프기까지 해서 뭐냐고 물어봤지만 알려주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만져서 확인해 봤더니 핸드폰으로 내 이빨을 누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랑 집사람은 누운 채로 서로를 보며 그렇게 즐거워하며 웃었고 난 그렇게 꿈에서 깼다.
지금 집사람은 조금 먼 곳에 가 있다.
내 감정이 이럴 줄은 몰랐다.
아무렇지 않게 덤덤하게 기다릴 줄 알았는데 가끔씩 이런 기분이 날 무기력하게 만든다.
집사람이 보고 싶다.
그 장난들을 다시 겪고 싶다.
하루라도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지만 집사람만이 할 수 있고 집사람이 해야만 되는 일이라 전화통화로 빨리 오라고 말하지는 못한다.
어차피 떨어져 있어서 힘든건 집사람이 더하기 때문에 힘들어할 마음에 내가 더 보태고 싶지는 않다.

2012년 8월 3일 금요일

내가 기억하는 몇 가지 꿈들. 예지몽 데자뷰 일화

시골을 떠나 서울 근교로 이사온 지 얼마 안되서 꾼 꿈이다.(내 나이 5~6살 쯤인듯)
온통 하얀 방에 하얀 유령에 하얀 바위가 등장한다.
방들은 문은 없고 아래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며 동그랗고 하얀 큰 바위가 내게로 굴려 내려오는 상황고 다리 없는 유령들이수첩을 들고 싸인을 받기 위해서인지 인터뷰를 위해서인지 내게 몰려 오는 상황이었다.
유령의 모습은 영화 '고스터 바스터'에 나오는 유령의 모습이었는데 그 영화를 보고 꿈을 꾼건지 꿈을 꾸고나서 그 영화를 본건지는 헷갈린다.
그 꿈을 꾸던 당시에 내가 어떻게 되는 줄 알았단다.

초등학생 때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주택에서 세들어 살 때 친척 형이 근처 문방구에서 장난감 총을 사서는 바로 옆 주택 입구 계단에 둘이 앉아서 친척 형이 그 총을 조립해 줬다.
이 때가 처음으로 꿈을 반복적으로 꾼 때이다.
하루에 한 번씩 7일간 꾼 꿈인지 하루에 7번 꾼 꿈인지 총을 실제로 선물받고 꿈을 꾼건지 꿈을 꾸고 총을 선물 받은 건지 꿈만 꾼건지 실제로 선물도 받은건지 아직도 헷갈리는 꿈이다.
그런데 지금 나이를 먹고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때 당시에 실제로 내게 총을 선물해 줄만한 친척 형이 곁에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초등학교 고학년때이거나 중학생 때쯤에 꾼 꿈이다.
아주 작은 단칸방에 어떤 누나와 단 둘이 있었는데 누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 있고 나는 그 누나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누워 있었다.
그리고 누나와 날 향해 아주 작은 창문을 통해서 따스한 햇볕이 쏟아지고 있었는데 정말 따뜻하고 포근하고 편안하고 행복했었다.
그때가 심리적으로 많이 외로웠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 꿈을 꾸고 나서 한동안 길거리에서 그런 누나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여자들을 유심히 쳐다보면서 등 하교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중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하루에 한 번 이상 심할 때는 7번에서 10번 이상 가위에 눌렸었다.
가위에 눌리는 게 군대에서도 가끔 있었고 그 후에도 아주 가끔씩 찾아오기는 했는데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이 가장 심했었다.
하지만 귀신은 한 번도 못봤다.
누구는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느끼기도 했다는 데 나는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위에 눌리면 어떻게 해서든지 깨어났기 때문이다.
손가락을 물거나 숨을 참거나 하는 식으로.
그런데 깨어나면 손가락을 문 자국이나 아픔은 없다.
이 역시도 꿈 속에서 행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사이의 어느 날, 한 동안 666과 악마에 대해서, 악마처럼 살아보는 것에 대해서 심취해 있던 어느 날에 아주 심각한 꿈을 꾸었다.
아주 칠흙처럼 어두운 곳이었는데 사방이 어두웠고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어디가 위고 어디가 아래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 곳에서 나는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뒤에서 그 칠흙같이 어두운 그곳보다 더 어두운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형태가 없는 어두움이었지만 살아있는 무언가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것이 악마라고 느낌으로 알 수 있었는데 그것은 나를 데려가려 하거나 나를 악마처럼 만들으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무서움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는데 다른 한 쪽에서 빛보다 밝은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는데 난 그것이 신이라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고 빛보다 밝은 그것(역시 행체는 없었음)을 향해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울면서 잘못했다고 빌었다.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빌었었다.
얼마나 무섭고 실제같았는지 깨어나서도 한 동안 눈물흘리며 울었다.
그 후로는 신을 부정할 용기가 없어져 버렸고 종교를 비판하기는 하지만 신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또한 악마같은 삶이라던지 하는 허무맹랑한 짓도 않한다.


군인이었을 때 외박 신청을 하고 나온 부하들이랑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그런데 술을 먹고 길거리에서 부하 중 한 명이 지나가는 차를 째려봤다는 이유로 싸움이 붙었다.
그 날은 내가 술이 떡이 되서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는데 그 날의 창피함으로 그 날 이후로는 술을 취할 정도로 마시지 않는다.
그런데 그 싸우는 광경을 지켜보던 여자 두 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하얀색 차안에서 쪽지에 차 번호를 적었다면서 우리에게 건내줬다.
신고할 거면 증인해 주겠다는 말과 함께.
하지만 나는 별 일 아니라면서 그들을 보냈는데 사실은 군인 신분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지만 내가 해결하지 못했다는(맞고 있는 부하들을 거의 방치했었다. 왜 상대편 애들이 나는 안 건드렸는지 아직도 의문) 창피함 때문에 그녀들을 돌려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부대에서 몇 일간 미안함 때문에 그 날의 부하들의 얼굴을 못 봤었다.
그런데 싸움 이후의 그녀들과 그녀들의 행동을 이미 꿈에서 이미 봤었다.
사건이 터지고 난 후에야 깨닫게 되는 게 참 아쉽지만 그 날의 일도 기억에서 쉽게 버리지 못해 간직하고 있다.

일을 하면서 알게 된 동생의 결혼식에 갔었는데 결혼식은 교회에서 하고 식사는 다른 식당을 잡아서 했었다.
그런데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그 동생의 아는 형들과 함께 했는데 그 사람들이 식당에 들어가는 뒷모습을 전 날 꿈에서 꿨었다.
예지몽이나 데자뷰가 특별할 건 없었지만 그 꿈(그 현실)은 바로 하루 전에 꾼 꿈이 현실에서 나타나서 나한테는 좀 다른 의미가 있었다.
보통은 짧아도 한 달이상의 시기적인 거리가 유지됐었는데 그 날만 하루 차이로 발생해서 예지몽의 시간 차이가 왜 이렇게 짧아졌나 하고 혼자 고민했었다.

가장 최근에 겪은 데자뷰는 집사람이랑 은행에 갔었는데 그 은행과 은행에서 서류 작성중인 집사람의 모습과 은행의 창문 밖으로 지나가는 여성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집사람도 꿈에 관한 일화들이 있어서 이런 날 이해한다는 것이었다.
그 전에는 그런 이야기들을 말한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은행에서 데자뷰를 이야기했는데(사실 믿어줄 거란 기대도 안 했고 이해할 거란 기대도 없었다) 집사람도 그런 일들을 겪어봤다는 것이었다.
집에 큰 일이 있거나 가족 중 누군가가 크게 다치면 꼭 꿈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 좋은 꿈을 꾸게 되면 항상 불안해 한다고 한다.

다시 중학생 때로 돌아가서 그때는 거의 매일 야한 꿈만 꿨었다.
엎드려 잔다거나 몸을 약간 불편하게 만들고 자면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고 꿈 속에서 절벽같은 곳으로 떨어지면 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꿈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게 되면서 나는 거의 매일 꿈을 꿨고 거의 매 번 야한 꿈만 꿨었다.
그러다 한 번은 내가 슈퍼맨이 되었는데 이상하게 날 수가 없었다.
그 전까지는 꿈 속에서 나는 것에 문제가 전혀 없었는데 이상하게 그 날만은 날 수가 없었다.
그런 상태로 어느 지하의 긴 터널을 걷다가 나왔는데 횡단보도 건너편에 엄마랑 동생이 서 있었다.
그런데 차도에서 수 많은 승용차들이 지나가다가 큰 버스가 한 대 지나갔는데 버스가 지나가고 엄마랑 동생이 없어져 버렸다.
이 꿈을 또 한동안 반복적으로 꿨었다.

글을 적다가 생각이 난 것인데, 한 동안 꿈 속에서 사람의 얼굴을 보지 못했었다.
보려고 하면 꿈에서 깨기 일수였었다.
한 동안 그런 시간들을 보냈었는데 한 번은 평상시처럼 하늘을 날면서 야한 짓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화면이 바뀌더니 내가 차를 운전하고 있었고 차는 어두운 곳을 지나다가 대나무로 만들어진 울타리같은 것을 들이받았다.
그리고는 내 양 옆을 사람의 얼굴들이 지나가는데(두상만, 명함사진 찍었을 때 나오는 어깨선까지)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고 모두가 양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들로 모두가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 꿈을 꾸고 나서 한 동안 무슨 뜻인가 하고 고민했었다.


2012년 8월 1일 수요일

태능선수촌, 예선에서 탈락해도 그들은 국가대표

꿈 속에서 어떤 일을 계기로 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 전 상황 까먹음)
내 주위에는 남자 친구도 있었고 날 좋아하는 여자들도 있었다.
나는 어떻게 운동을 할 까 고민하다가 프로 선수들처럼, 프로 선수들과 함께 운동하는 것이 좋은 방법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두 부류의 선수들을 만나봤다.

한 쪽은 정말 악바리처럼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나와 맞지 않다고 여겼고 다른 한 쪽이 비교적 점잖게 운동을 하고 있어서 그쪽으로 택했다.

실내 체육관 같은 곳이었는데 어떤 선수들의 운동을 따라할 까 구경만 한참 하다가 달라기를 하고 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한 명은 마라톤 선수처럼 보였고 다른 한 명은 코치이거나 보조해주는 선수같았다.
난 그들처럼 운동을 하기로 하고 피해가 안 가게 그들의 동선에서 벗어나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렇게 천천히 달리다가 땀에 젖어있는 메트리스를 보게 되었다.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있는 다른 한 사람에 의해서 젖어 있고 헤져 있는 메트리스를 보며, 그렇게 땀을 흘렸으면서도 아직도 계속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있는 선수를 보면서 내가 너무 편하게, 내가 너무 우습게 생각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안에서 운동을 한다고 깨작 깨작 거리는 것이 전문 선수들에게 민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공간과 시간을 나에게 양보했지만 나는 그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 몰랐던 것이다.

이러면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실내 체육관을 나와보니 뒤 편 공터에서 전직 프로 선수들이 야구를(재미로) 하기 위해 팀을 나누려고 상의 중에 있었다.
여유를 부리는 자들은 이미 열심히 한 자들이다 라는 생각을 그 광경을 보면서 했다.

그들을 뒤로 하고 앞쪽으로 나가니 친구와 여자가 날 보며 왜 나왔냐고 물었다.

그들은 내가 열심히 해서 그 안에서 다른 선수들과 같이 될 수 있다고 믿었고 그렇게 열심히 할 것이라고 믿었었던 것이다.
나는, 그들은 나와 다르다고 나는 그렇게 될 수 없다고 나는 그렇게 되려는 생각도 없었다고 말하면서 그 자리를 떠나려 했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날 설득시켜 다시 실내 체육관 안으로 들어가게끔 만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나는 끝내 거절했고 그들은 그런 날 보면서 실망했다.

- 올림픽 시즌이라 이런 꿈을 꿨겠지만 내가 가볍게 여기는 것이 어떤 이에게는 절실한 무엇일 수도 있다는 것, 정말 열심히 한 자만이 후일 여유를 부릴 자격이 있다는 것, 나에게 내가 생각하는 그 이상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내가 그 이상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봤다.




2012년 7월 28일 토요일

큰 일과 작은 일

꿈을 꿨는데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다.

꿈 속에서 큰 일과 작은 일을 각각 처리해야 했는데, 일을 내게 맡긴 사람이 내 통제에 따르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는 기억 속에서 꿈은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꿈은 왜 짧은 시간 머릿속에서 머물다가 지워지는 걸까.

아무튼 꿈 속에서 큰 일은 많은 사람들이 부탁한 일, 많은 사람과 연관된 일이었고 작은 일은 적은 사람과 연관된 일, 적은 사람이 부탁한 일이었다.

그런데 맞는 것 같다.
보다 많은 사람이 연관되고 피해나 혜택이 간다면 큰 일이고 그렇지 않다면 작은 일이다.
국민 대다수가 걸린 문제면 큰 일이고 친구 1명이 걸린 문제면 상대적으로 작은 문제다.
너무 간결하고 간단하고 쉽다.


2012년 7월 16일 월요일

신발을 제공받고 나는 그들을 지켜주고

손으로 만든 군화 개념의 운동화를 제공 받았다.
운동화를 만들고 내게 제공한 사람들은 총 3명, 그 중 집사람도 있었다.
운동화의 가죽은 무척이나 두꺼웠고 투박했으며, 두껍고도 단단하게 바느질을 해놨었다.

그 신발을 제공받으면서 나는 그들을 지켜줘야 한다는 사명감보다는, 은혜에 보답한다는 느낌과도 멀고 의무감과도 먼 느낌, 꼭 신발과 안전을 거래한다는 느낌이었다.
그것도 목숨을 바쳐 지킨다기 보다는 '할 수 있기 때문에 거래한다' 라는 느낌.

2차 세계 대전

내가 꿈 속에서 느끼는 사회적 분위기는 이런 것.

2012년 7월 7일 토요일

친구의 죽음 하지만 이름을 모르는

군대에서 마지막 날을 보내고 내일이면 전역을 하는 친구가 있다.
그런데 그 친구와 다른 몇 명이 요정처럼 작아져버렸고 그 것을 알게 된 몇 명이 그 작아진 친구들을 내놓으라고 하면서 찾기 시작했다.

나는 마땅히 숨길 곳이 없어 그 친구들을(메뚜기 또는 종이 인형같은 실제 요정 한 명 포함) 스테인리스 보온통에 넣어버렸다.
그런데 그 것이 문제였다.
사람들은 나에게 작아진 친구들을 내놓으라고 계속 재촉했고 나는 모른다고 했는데, 사람들이 보온통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나는 보온통에 아무것도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보온통을 흔들어야만 했다.

최대한 조심히 흔들었지만 안에서는 죽겠다고 난리였다.
그들은 너무나 작았고, 내가 흔드는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 안에서의 충격이 16층에서 떨어지는 충격일 거라며 비웃었다.

그러다 보온통이 점점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고 안에서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를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난 이대로 있다가는 모두 익사할 것이란 생각이 들어 사람들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뛰쳐 나가서 다른 곳으로 향했고 사람들이 없는 곳에 다다르자 바로 보온통을 열고 물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미 모두 죽은 뒤였고 부활한 요정이었나, 다른 요정이 내게 군대 막사로 돌아가보라고 했다. 자신이 숨겨놨다고

나는 나 자신을 자책하며 심하게 울면서 막사로 뛰어갔다.

다른 사람들은 어차피 눈 앞에 그들의 시체가 있어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었다.
크기도 작아지고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인다 해도 아마 풀때기 정도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최대한 빨리 찾아내고 싶었다.

요정에게 어디인지 정확한 위치를 물었지만 요정은 급할 것 없다는 말만 하고서 정확한 위치를 알려 주지는 않았다.
다만 2층이라는 것만.

그렇게 나는 막사에 도착했지만 도착한 위치는 6층이었고 점점 내려가서 2층에 도착해서 병사들에게 특정 위치를 물었지만 모두 모른다며 나를 외면하고 가볍게 대했다.(당시 계급은 부사관)
난 그들의 그런 행동을 참으면서 그들의 시체만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여자분(나이 좀 있는)이 알려줘서 나는 시체가 복도에 설치되어 있는 전화기 밑 나무상자(메모지를 보관하는 곳 같았다)에 그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그 전에 병사들의 누구를 찾는지, 어떤 친구를 찾는지에 대한 물음에 대해 나는 대답하지 못하며 친구에게 미안해했다.
정말 슬펐고 유일한 친구였음에도 나는 그 친구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 병사들의 시선을 받으면서 나는 전화기의 메모 박스를 열어 시체를 찾아야 했다.
이미 종이나 풀로 변화 말라버린 상태의 사람 모양으로 접혀진 그것들을 들어올리며 통곡하는 병신짓을 병사들은 기대했던 것이다.
나를 비웃고 싶어서.

하지만 나는 그 안에서 친구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분명 다른 이들의 시체였지만 친구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없다고 말하고서 그 막사를 나왔다.

참, 그 여자가 내게 알려주기 전에 다른 병사가 나를 심하게 약올리는 말투로 한 마디해서 내가 "평소에는 조용한 거 알지, 하지만 지금은 조심해라. 죽고 싶지 않으면" 이라고 말하면서 쇠로 된 망치를 집어들었고 그 후에 여자가 알려줘서 메모 박스까지 갈 수 있었다.

나는 막사를 나오고서도 한참을 울었다.
유일한 친구를 잃은 슬픔에, 유일한 친구임에도 이름조차 기억 못하는 미안함에, 그 친구를 내 손으로 죽였다는 죄책감에, 그리고 그 친구의 시체조차 못 찾았다는 허망함에.

하지만 딱 한 가지가 내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슬픈 클래식이 날 위해 흘러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클래식 음악이 나와 내가 슬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생각하면서 꿈에서 깼다.

그 클래식 음악은 내가 켜 놓은 음악이었다.

2012년 7월 3일 화요일

[꿈] 그녀가 떠났다.

내가 결혼할 때 였나, 아니면 집사람을 집으로 데려올 때 였나.
비록 꿈 속에서의 일이었지만 집사람 말고 한 여자가 더 같이 들어왔었다.
짧은 꿈이었고 그 때는 버스 안에서, 불쌍해서인지 미련 때문인지 그녀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그녀와 집사람과 내가 함께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꿈이었다.

지금 그녀를 다시 꿈에서 봤다.
단발머리였던 것 같았는데 오늘은 스포츠머리로 짧게 잘라져 있었고 남자처럼 1mm 정도의 수염도 자라있었다.(콧수염은 인중이 아닌 윗입술에 자라 있었다.)
그녀가 짧게나마 나의 체온을 살짝 느끼고는 미련을 접고 떠나겠다며 훌쩍이며 떠나갔다.

침대는 우리의 침대였지만 집은 우리의 집이 아니었다.
결혼식 때보다 많은 사람들과 친척들이 자리에 앉아 있아서 식사하고 있었고 삼촌이 들어오고 삼촌이 본인의 어린 아들을 안고 거실(집 입구쪽)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을 때 그녀는 훌쩍이며 짐을 싸들고 신발을 신으려 허리를 숙이다 이내 사라졌다.
내가 놀라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을 때 사람들은 집중해서 들어줬지만 이야기를 끝내지는 못했고 다만 빨리 와서 식사하라고 재촉하여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식사 자리에 참석하려할 때 꿈에서 깼다.

꿈 속에서 그녀가 함께 버스를 탔을 때는 사람이었지만 그녀가 짐을 싸들고 나갈 때는 귀신이었다.

오늘 가볍지 않은 꿈을 계속 꾼다.

[꿈] 몸이 무겁다

꿈을 꾸었다.
마법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나는 동료들과 함께 수시로 옮겨다녀야 하는데 짐이 많아서 항상 뒤쳐졌다.
다른 사람들은 가방도 1개 뿐이고 짐도 별로 없이 몸만 가볍게 잘 움직이는데, 나는 가방도 3개에다가 옷도 많아서 전 날 세탁기에 넣고 돌렸던 옷들이 탈수조차 되지 않아 나혼자 바둥거리고 가방에도 옷이 들어가지 않아서 꾸역 꾸역 넣고 있었다.
창문 밖에서는 다른 세상이 만들어지면서 땅 속으로 기존의 건물들이 들어가고 땅이 뒤집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길거리에서는 마법을 부릴 수 있는 3명이 급히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는데 그곳 사정을 전혀 모르는 외지인(마법을 모르고 믿지 않는) 자매 3명이 마차를 타고서 길을 양보하지 않아서 마법사들이 마법으로 그들을 밀어내고 있었고, 마법으로 인해 길이 뚫리고 그 외지인 3 자매는 그런 광경을 보면서 당황하고 있었다.

꿈 중간에 그곳 원주민들의 이끌림에 따라 정글 같은 곳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거북이의 입 안에 깔대기를 넣고 풀과 잎사귀로 만든 부채로 허공을 한 번 탁! 치니까 그 깔때기를 따라 컵에 물이 따라졌다.
원주민은 그 물이 공중에서 만들어진 물이라고 했고 나는 그 물이 거북이의 입 안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물을 마셨다.
내 뒤의 다른 사람도 마셨지만 그 맛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처음 먹어보는 맛)

핸드폰의 진동을 느끼면서 꿈에서 깼는데, 깨고 나서 핸드폰을 보니 진동이 울리지 않았다.
핸드폰의 진동도 꿈이었던 것이다.

비록 일반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그런 직업은 아니더라도 같은 직업인끼리에서는 나름 인정받는 기술을 갖고 있음에도 사는 곳이 여의치 않고 가족이 있어서 원하는 데로 일을 할 수 없는 지금의 심정이 반영된 꿈인 것 같다.

사는 곳에서는 일자리를 찾을 수 없고 사는 곳을 떠나자니 가족이 걸린다.

살면서 이렇게 '자동차'의 필요성을 느껴본 적이 없다.

2011년 4월 15일 금요일

사주팔자에 관한 꿈

사주팔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나에게는 기억에 남는 꿈들이 몇 가지 있다.
지금 막 그 꿈들 중 하나를 꿨다.

옛날식 단층으로 된 집들이 빼곡히 늘어서 있었다.
사람 하나 지나갈 수 있는 길을 가운데 두고 위와 아래에 집들이 늘어서 있고 그 길 끝에는 사람이 나갈 수 없도록 문으로 막혀 있었다.
하늘도 막혀 있는데 까마귀 같은 새들이 기분 나쁘게 날고 앉으며 울고 있었다.
(영화는 본 적 없지만 대충 이런 분위기다.)

꿈의 시작되면서 한 남자가 나에게 그 길을 벗어날 수 없으니 사주를 보라고 하는데 나는 사주를(혹은 부적) 보는 것을 거부하고 길을 따라 걷는다.
길을 따라 걸으며 뒤로 호두나 뭐 그런 것들을 내 등 뒤로 뿌리며 액운을 쫓는 행위를 했었고 문앞에 다다랐을 때 문을 부시기 위해 몸을 날려 발길질을 몇 번 하다가 문의 가운데 기둥이 아닌 유리창을 노려 다시 몸을 날려 발길질을 하고 두 번만에 그 문을 부시고 나올 수 있었다.
문을 부시고 나와서도 나는 계속해서 길을 따라 걸으며 뒤로 무언가를 뿌렸고 또 다시 길 끝에 다다랐을 때는 들어갈 수 없는 닫혀진 문들과 사주를 점치는 사람들과 그들의 말에 따라 자신의 몸을 묶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 옆으로 차 길이 나 있었는데 난 그 길에서 탈 것(자전거였는지, 미끄러지는 무언가였는지 모를)을 타고 시골집(내 어릴적 시골집)을 찾아 시골길을 따라 움직였다.
시골길을 따라 헤메며 속으로 "주소를 모르니 이렇게 헤메지" 라고 생각하며 길 주위를 둘러보는데 앞에 밀 것이 부착된 커다란 차가 길 주위의 쓰레기를 길 한쪽으로 밀어 청소하고 있었다.
(이 것보다 더 거대하고 더 날렵했다. 멀리서 봤을 때 우주선처럼 보일 정도로)

그러면서 꿈에서 깬 듯 하다.
이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모른다.
사주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꿈인지,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나고픈 욕망을 나타낸 것인지, 단순한 개꿈인지.
다만, 이 꿈을 지금까지 세 번정도 꾼 것 같은데 전체적인 상황은 똑같지만 문을 부신 건 처음인 것 같다.(혹은 아닐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