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18일 금요일

백 마리의 수컷

백 마리의 수컷이란 단어를 생각하게 된 이유.

'100'
'100'이란 숫자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100일이면 3개월이고 뭐든지 3개월만 넘기면 습관화되거나 습관을 바꿀 수 있다.
100번을 참거나 100번을 시도한다면 그 일은 이미 끝났거나 성공했거나 할 것이다.
'100'이란 숫자는 단순히 100만을 의미하지 않고 '영원'을 의미하기도 한다.
100번을 참거나 100번을 시도한다는 것은 '99번 다음 100번'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또는 '영원히'라는 말을 '대신'하기도 한다.

'마리'
아주 어렸을 때부터 생각했던 것인데 사람이나 짐승이나 똑같다고 생각한다.
일개미의 무리에서 일을 하는 개미는 전체의 70%뿐이고 30%는 논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적이 있다.
그 노는 30%의 일개미를 제거하고 70%만 남겨두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 나머지 70%의 일개미 무리에서 또 다시 30%의 노는 일개미들이 나타난다.
그것이 인간의 무리에서 똑같이 발생하고 어떤 일이나 상황에서도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에 일이나 금전적인 거래 또는 이윤 활동 등에서 30%의 손실은 항상 안고 가야한다는 것이 그 연구결과의 내용이고 그 연구결과를 근거로한 또 다른 발표의 내용이었다.

단순히 일개미 때문에 인간과 짐승이 같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문화와 침팬치의 문화가 거의 같다는 것.(성매매, 집단 따돌림이나 집단 괴롭힘 등)
같은 종의 고래들에게서 발견되는 다른 사냥법, 약자의 다산과 강자의 적은 수의 출산,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수컷들의 싸움과 수컷의 능력이 중요시되는 생존환경.
그리고 아무리 인류가 발전했다고 해도 여전히 가장 단순한 먹고, 자고, 입는 고민에서 해방되지 않았다는 것과 어떤 말과 어떤 행동으로 거창하게 포장되도 종족 번식에서 도태되는 자와 살아남는 자로 구분되고 종족 번식에 성공한 자로 남기 위해 지금도 '수컷들의 싸움'을 하고 있는 것 등이 결코 짐승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한동안은 오히려 짐승이 '더 양심적'이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호랑이에 대한 사자 무리의 기습과 보복을 보고서 '더 양심적이다'라는 생각은 접었다.)

'수컷'
남자는 나이를 아무리 많이 먹어도 수저 들 힘만 있으면 여자를 밝힌다고 한다.
그것이 결코 좋은 말은 아니지만 그것이 사실일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남자 뿐만 아니라 여자도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자신을 여성으로 봐주는 사람과 중성으로 봐주는 사람 중에서 분명 여성으로 봐주는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꼭 '행위의' 성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종족'의 의미에서 남자는 죽을 때까지 수컷이고 여자는 암컷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섹스 행위'나 '욕'의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다.

남자는 '수컷'으로 살아갈 때 진정한 목표와 행동을 갖는다고 나는 믿는다.
(다만 나 역시도 수컷으로써 제대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게 문제)

나는 그래서 내 블로그를 백 마리의 수컷이라고 이름 지었다.






최근 본 영화배우 중 수컷 냄세 물씬 나는 '빈디젤'
빈디젤을 영화로 처음 본 건 '에일리언 2020'
제목이 너무 싼티나고 저예산 느낌이 강해서 기대 안하고 봤는데 거기서 빈디젤 보고 "쟤는 성공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
그리고 바로 이어서 본게 '리딕'
이때부터 리딕이 빈 디젤이고 빈 디젤이 리딕이었음.
분노의 질주가 성공했네 어쩌네 하는데, 나는 리딕의 빈디젤이 더 빈디젤 같기도 하고 더 좋음

아무튼 뭐 그렇다는 얘기...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