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을 떠나 서울 근교로 이사온 지 얼마 안되서 꾼 꿈이다.(내 나이 5~6살 쯤인듯)
온통 하얀 방에 하얀 유령에 하얀 바위가 등장한다.
방들은 문은 없고 아래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며 동그랗고 하얀 큰 바위가 내게로 굴려 내려오는 상황고 다리 없는 유령들이수첩을 들고 싸인을 받기 위해서인지 인터뷰를 위해서인지 내게 몰려 오는 상황이었다.
유령의 모습은 영화 '고스터 바스터'에 나오는 유령의 모습이었는데 그 영화를 보고 꿈을 꾼건지 꿈을 꾸고나서 그 영화를 본건지는 헷갈린다.
그 꿈을 꾸던 당시에 내가 어떻게 되는 줄 알았단다.
초등학생 때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주택에서 세들어 살 때 친척 형이 근처 문방구에서 장난감 총을 사서는 바로 옆 주택 입구 계단에 둘이 앉아서 친척 형이 그 총을 조립해 줬다.
이 때가 처음으로 꿈을 반복적으로 꾼 때이다.
하루에 한 번씩 7일간 꾼 꿈인지 하루에 7번 꾼 꿈인지 총을 실제로 선물받고 꿈을 꾼건지 꿈을 꾸고 총을 선물 받은 건지 꿈만 꾼건지 실제로 선물도 받은건지 아직도 헷갈리는 꿈이다.
그런데 지금 나이를 먹고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때 당시에 실제로 내게 총을 선물해 줄만한 친척 형이 곁에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초등학교 고학년때이거나 중학생 때쯤에 꾼 꿈이다.
아주 작은 단칸방에 어떤 누나와 단 둘이 있었는데 누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 있고 나는 그 누나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누워 있었다.
그리고 누나와 날 향해 아주 작은 창문을 통해서 따스한 햇볕이 쏟아지고 있었는데 정말 따뜻하고 포근하고 편안하고 행복했었다.
그때가 심리적으로 많이 외로웠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 꿈을 꾸고 나서 한동안 길거리에서 그런 누나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여자들을 유심히 쳐다보면서 등 하교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중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하루에 한 번 이상 심할 때는 7번에서 10번 이상 가위에 눌렸었다.
가위에 눌리는 게 군대에서도 가끔 있었고 그 후에도 아주 가끔씩 찾아오기는 했는데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이 가장 심했었다.
하지만 귀신은 한 번도 못봤다.
누구는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느끼기도 했다는 데 나는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위에 눌리면 어떻게 해서든지 깨어났기 때문이다.
손가락을 물거나 숨을 참거나 하는 식으로.
그런데 깨어나면 손가락을 문 자국이나 아픔은 없다.
이 역시도 꿈 속에서 행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사이의 어느 날, 한 동안 666과 악마에 대해서, 악마처럼 살아보는 것에 대해서 심취해 있던 어느 날에 아주 심각한 꿈을 꾸었다.
아주 칠흙처럼 어두운 곳이었는데 사방이 어두웠고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어디가 위고 어디가 아래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 곳에서 나는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뒤에서 그 칠흙같이 어두운 그곳보다 더 어두운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형태가 없는 어두움이었지만 살아있는 무언가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것이 악마라고 느낌으로 알 수 있었는데 그것은 나를 데려가려 하거나 나를 악마처럼 만들으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무서움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는데 다른 한 쪽에서 빛보다 밝은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는데 난 그것이 신이라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고 빛보다 밝은 그것(역시 행체는 없었음)을 향해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울면서 잘못했다고 빌었다.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빌었었다.
얼마나 무섭고 실제같았는지 깨어나서도 한 동안 눈물흘리며 울었다.
그 후로는 신을 부정할 용기가 없어져 버렸고 종교를 비판하기는 하지만 신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또한 악마같은 삶이라던지 하는 허무맹랑한 짓도 않한다.
군인이었을 때 외박 신청을 하고 나온 부하들이랑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그런데 술을 먹고 길거리에서 부하 중 한 명이 지나가는 차를 째려봤다는 이유로 싸움이 붙었다.
그 날은 내가 술이 떡이 되서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는데 그 날의 창피함으로 그 날 이후로는 술을 취할 정도로 마시지 않는다.
그런데 그 싸우는 광경을 지켜보던 여자 두 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하얀색 차안에서 쪽지에 차 번호를 적었다면서 우리에게 건내줬다.
신고할 거면 증인해 주겠다는 말과 함께.
하지만 나는 별 일 아니라면서 그들을 보냈는데 사실은 군인 신분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지만 내가 해결하지 못했다는(맞고 있는 부하들을 거의 방치했었다. 왜 상대편 애들이 나는 안 건드렸는지 아직도 의문) 창피함 때문에 그녀들을 돌려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부대에서 몇 일간 미안함 때문에 그 날의 부하들의 얼굴을 못 봤었다.
그런데 싸움 이후의 그녀들과 그녀들의 행동을 이미 꿈에서 이미 봤었다.
사건이 터지고 난 후에야 깨닫게 되는 게 참 아쉽지만 그 날의 일도 기억에서 쉽게 버리지 못해 간직하고 있다.
일을 하면서 알게 된 동생의 결혼식에 갔었는데 결혼식은 교회에서 하고 식사는 다른 식당을 잡아서 했었다.
그런데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그 동생의 아는 형들과 함께 했는데 그 사람들이 식당에 들어가는 뒷모습을 전 날 꿈에서 꿨었다.
예지몽이나 데자뷰가 특별할 건 없었지만 그 꿈(그 현실)은 바로 하루 전에 꾼 꿈이 현실에서 나타나서 나한테는 좀 다른 의미가 있었다.
보통은 짧아도 한 달이상의 시기적인 거리가 유지됐었는데 그 날만 하루 차이로 발생해서 예지몽의 시간 차이가 왜 이렇게 짧아졌나 하고 혼자 고민했었다.
가장 최근에 겪은 데자뷰는 집사람이랑 은행에 갔었는데 그 은행과 은행에서 서류 작성중인 집사람의 모습과 은행의 창문 밖으로 지나가는 여성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집사람도 꿈에 관한 일화들이 있어서 이런 날 이해한다는 것이었다.
그 전에는 그런 이야기들을 말한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은행에서 데자뷰를 이야기했는데(사실 믿어줄 거란 기대도 안 했고 이해할 거란 기대도 없었다) 집사람도 그런 일들을 겪어봤다는 것이었다.
집에 큰 일이 있거나 가족 중 누군가가 크게 다치면 꼭 꿈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 좋은 꿈을 꾸게 되면 항상 불안해 한다고 한다.
다시 중학생 때로 돌아가서 그때는 거의 매일 야한 꿈만 꿨었다.
엎드려 잔다거나 몸을 약간 불편하게 만들고 자면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고 꿈 속에서 절벽같은 곳으로 떨어지면 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꿈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게 되면서 나는 거의 매일 꿈을 꿨고 거의 매 번 야한 꿈만 꿨었다.
그러다 한 번은 내가 슈퍼맨이 되었는데 이상하게 날 수가 없었다.
그 전까지는 꿈 속에서 나는 것에 문제가 전혀 없었는데 이상하게 그 날만은 날 수가 없었다.
그런 상태로 어느 지하의 긴 터널을 걷다가 나왔는데 횡단보도 건너편에 엄마랑 동생이 서 있었다.
그런데 차도에서 수 많은 승용차들이 지나가다가 큰 버스가 한 대 지나갔는데 버스가 지나가고 엄마랑 동생이 없어져 버렸다.
이 꿈을 또 한동안 반복적으로 꿨었다.
글을 적다가 생각이 난 것인데, 한 동안 꿈 속에서 사람의 얼굴을 보지 못했었다.
보려고 하면 꿈에서 깨기 일수였었다.
한 동안 그런 시간들을 보냈었는데 한 번은 평상시처럼 하늘을 날면서 야한 짓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화면이 바뀌더니 내가 차를 운전하고 있었고 차는 어두운 곳을 지나다가 대나무로 만들어진 울타리같은 것을 들이받았다.
그리고는 내 양 옆을 사람의 얼굴들이 지나가는데(두상만, 명함사진 찍었을 때 나오는 어깨선까지)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고 모두가 양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들로 모두가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 꿈을 꾸고 나서 한 동안 무슨 뜻인가 하고 고민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