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17일 금요일

구글 나우 출퇴근 설정을 웹에서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없던 기능이었는데 오늘 업데이트가 적용된 모양이다.

기존 안드로이드폰에서 출퇴근 설정을 하려면 핸드폰 언어를 영어로 설정하고 구글 지도를 지웠다가 다시 설치하는 등의 수고스러움을 거쳐야 했지만 이번 업데이트로 웹에서 집과 직장을 입력하면 안드로이폰 내의 구글 나우에 바로 적용이 된다.
다만 아쉬운 점은 검색은 되지만 적용이 되지 않는 주소가 있다는 것이다.
웹 지도 상에서 검색도 되고 교통편 등의 활용도 되는 주소 중에 집이나 직장으로의 적용에서만은 안되는 경우가 있었다.

이번 업데이트와 더불어 어제 업데이트가 된 것으로 보이는 것은것은 핸드폰 내에서 교통편 검색을 하면 길안내가 추가 된 것 같다는 게 하나 있다.

실시간으로 가장 빠른 교통편을 안내하는 내용이 달라지는 걸 보면 입력된 내용을 출력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정말 실시간으로 검색해서 출력하는 것 같아서 좋고 특히 광역 검색이 잘 되서 좋고 이번처럼 길 안내나 출퇴근 입력이 용이해진 점도 좋은데 다만 교통편의 검색 내용이 대략 5분에서 10분 가량 늦은 정보라는 점이 날 당혹스럽게 만드는 점이 아쉽다.
이 시간 문제만 해결되면 다음이나 네이버에 얼씬도 안 할 것 같은데.
더불어 노선 정보도 출력해줬으면 좋겠다.
초행길에서는 노선 정보를 미리 알고 있어야 편한데 그것이 없어서(혹은 내가 발견 못해서) 약간 불안하다.

2012년 8월 14일 화요일

성공하는 사람은 시스템에 순응하는 사람

이런 거 이야기해서 좋을 것 하나 없고 나도 거부감이 상당한 주제이기는 한데, 가만히 보면 사회 시스템에 순응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 같다.
순응하고 이용하는 사람이 성공하고 반기를 들거나 개혁을 외치는 사람은 고생만 하다가 버려지기 일쑤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는 과거 친일파가 정리되지 않고 아직도 남아 있는데다가 생각해보면 이제는 그들을(친일로 떵떵거린 자들) 정리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많이 흐른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과거 나라를 버리고 일본에 붙어서 친일을 외친 자들 중에서는 정말 친일파여서 친일을 한 자들도 있겠지만 친일도 아니고 친한도 아니고 친미도 아니고 그냥 그 당시에 살아남기 위해서 또는 기회로 여기고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면서 일본에 붙은 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나라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을 지도 모른다.
나라에 대한 개념도 없고 이웃에 대한 개념도 없고 더불어 산다는 개념도 없고 베풀거나 나누거나 희생하거나 이념까지도 그들에게는 전혀 중요한 주제가 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단지 '나'만 존재하며 나에게 기회가 된다면, 돈이 되고 살아남는 방법이고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 그냥 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도 상사에게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보다는 아부하는 사람이 살아 남는다.
파업하는 사람보다는 군소리 없이 주는 대로 받는 사람이 살아 남는다.
대통령을 욕하는 사람보다는 친송하는 사람이 살아 남고 잘못된 법을 고치라고 외치는 사람보다는 못 본 척 피해가는 사람이 살아 남는다.

실상 길은 보인다.
어떻게 해야 되는 지 어디로 가야 하는 지 우리는 안다.
다만 그것이 양심에 걸리고 체면에 걸리고 내 방식과 다르고 먼저 간 사람에게 양보하는 것일 뿐 그 길을 모르거나 못 보지는 않는다.
모른 척 하는 것 뿐이고 못 본 척 하는 것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와 관련해 말한 것 중 하나가 "일본의 영향력이 더 이상 예전같지 않다." 다.
아무리 국면 전환용이라고 해도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으리라 믿고 싶다.
독도는 여전히 안전할 것이라고 믿으려고 하니 일본의 영향력에 대한 그의 말도 믿어야 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모두가 알다싶이 그는 친일이고 친미다.
하지만 지금 그의 행동을 봤을 때 과연 그가 친일일까 하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그냥 기회주의자일 지도 모른다.
일본이 강하고 미국이 강하니 그들에게 붙는다.
북한은 약하니 무시한다.
중국은 미국의 적국이라고 할 수 있으니 거리를 둔다.
그러다 지금처럼 일본이 더 이상 강국이 아니고 일본보다 더 강한 나라가 그에게 손을 내밀면 그 동안의 관계를 하루 아침에 소멸시켜버리고 이익만을 위해서 행동한다.
이것은 친미도 아니고 친일도 아니다.
단지 기회만 엿보면서 이리 붙었다가 저리 붙었다가 하는 기회주의자일 뿐이다.

새 세상은 하루 아침에 오지 않고 탄압은 바로 코 앞에서 벌어진다.
이 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무기력하게 쓰러져 가고 용기를 잃고 신념을 시험 받는다.

뜬금 없이 이런 생각을 해본다.
피 흘리지 않고 투쟁하는 방법은 '투표' 뿐이라는.

내 생각에는 기회주의자들이 성공하는 것은 맞는 것 같다.
신념 하나만으로 성공하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는 않은 것 같다.
거꾸로 그래서 사람들은 신념이 강한 사람을 좋아하는 지도 모르겠다.
흔하지 않고 쉽지 않으니까.

기회주의자들이 성공하는 세상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신념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고 어떤 것이든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하는 것이 멋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보고 싶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 .... 그러고 싶다.



경향신문 : 일본인 절반 "한국에 대한 감정 더 악화"(링크)
서울신문 : MB "국제사회 일본 영향력 예전같지 않다"(링크)

2012년 8월 12일 일요일

2012 런던올림픽 축구대표 박종우 "독도는 우리땅"

런던올림픽 축구경기 스위스 전에서 박종우가 몸싸움하는 걸 보니까, 남자더라.
그 모습을 보고 차범근 해설위원도 좋아서 흥분하던데.
팀 동료가 당했으니 응당 응징을 해줘야지.
나도 그 모습을 보면서 웃으면서 박수를 쳤다.

박종우가 정치적인 행위를 했느냐 안 했느냐도 중요할 테지.
올림픽이 정치적인 행위를 표현하는 장소가 되는 것도 곤란하겠지.
내 집을 내 집이라고 말하는 게 정치적인 건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도 중요하겠지.

그런데, 정치적인 행위로 본다고 했을 때 한 선수의 정치적인 행위가 땀의 결과물을 빼았을 명분으로 충분한가에 대해서 우선 생각해 봤을 때 나는 반대다.
만약 박종우 선수가 한 행동이 정치적이었고 그것이 올림픽에서 허용하기에 부적절하다고 판단된다면 차후 올림픽 출전을 금지하거나, 너무 멀다고 판단되면 축구 경기 출전에 대한 핸디캡을 주면 되지 않을까.
왜 부당한 방법으로 경기를 이긴 것도 아닌데 경기의 결과물을 빼았으려 하는가 말이다.
이건 시험에서 100점 맞은 학생이 정치적인 행위를 했다고 "너 시험 100점 맞은 거 취소야. 정치적인 행위를 했으니 0점이야." 라고 하는 거랑 뭐가 다른가.

또한 내 집을 내 집이라고 말하는 게 정치적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겠지만 정치적이라고 본다고 해도 그것은 전세계적인 문제를 거론한 것도 아니고 개최국인 영국을 건드린 것도 아니고 올림픽 위원회를 건드린 것도 아닌 딱 두 나라, 한국과 일본간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욱일승천기는 한국과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피해 당사국이 워낙 많기 때문에 거꾸로 문제가 심각해진다.(선수가 했느냐에 따라서)
만약 독일 선수가 나치를 상징하는 행위를 했다면 그것이 불러 올 태풍을 예상할 수 있는가.
독도는 두 나라간의 문제일 뿐 아닌가.
왜 올림픽 위원회가 남의 땅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지 모르겠다.
(모르진 않지, 일본 눈치 보는 거라고 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 우리 나라 대한민국의 현주소라는 점이다.
우리 중에 그 누가 대한민국을 약소국이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을까.
그런데 약소국이다.
미치도록 약해 빠져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그런 약소국.
핸드볼은 예전부터 판정상 불리하게 당했었고 이번에 보니까 수영의 박태환과 쑨양과의 판정 문제, 배구, 축구, 유도, 펜싱, 예전에는 체조 쪽에서도 점수 참 짜게 받았었는데 이번에는 모르겠고 암튼 등 등 등.
이번 런던 올림픽 때만큼 한국의 힘이 약한 것을 뼈저리게 느낀 것도 처음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박종우 선수의 문제가 어떻게 결정되어지던 우리나라에서 만큼은 박종우 선수를 다른 선수들과 똑같이 대해줬으면 좋겠다.
다른 선수들이 병역 해택을 받는다면 박종우 선수도 같이, 다른 선수들이 메달을 받는다면 박종우 선수도 같거나 최소한 비슷하게, 다른 선수들이 연금을 받는다면 박종우 선수도, 포상금도 같이, 모든 걸 같이 해줬으면 좋겠다.
박종우 선수가 한국 땅에서 차별을 당한다면 그것은 우리 스스로 약소국으로써의 치욕을 당연시하고 인정하는 것이 되고 정치인들이 국민들에게 "너희는 그렇게 당해도 돼" 또는 "우리는 그런 존재들일 뿐야"라고 말하는 것 밖에는 안되기 때문이다.

독도는 분명히 우리 땅이고 우리 섬이다.
이건 실효 지배가 어쩌구 역사가 어쩌구 할 문제가 아니라 그냥 우리꺼다.
서울이 언제 생겼는지 대전이 언제 생겼는지 제주도가 언제부터 우리꺼였는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그냥 우리꺼인 거다.

밖에서 친구에게 치이고 상사에게 치이고 직원에게 치이고 친구 남편 친구 부인 엄마 친구 아들 엄마 친구 딸 등에 치이고 어른 아이에게 치이더라도 집에서만큼은 언제나 내가 왕이듯이 박종우도 밖에서 마음 고생하더라도 자기 집(우리나라)에 와서는 마음 편히 "아~ 우리 집에 왔다."라는 말을 할 수 있도록 느끼게끔 해줬으면 좋겠다.






한겨레 : 박종우 동메달 박탈? "일본의 욱일승천기는 왜 허용하나"(링크)
한국경제 : 정치적인 문제로 메달 박탈된 역대 올림픽 사례는?(링크)

2012년 8월 9일 목요일

2012 런던올림픽 태권도는 망한 작품

박진감을 살리기 위해서 올림픽 종목에서 빼야 한다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고민을 많이 했고 그 결과물이 전자 보호구라고 알고 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이유는 전자 보호구는 오심을 어느정도 줄이는 데에는 역할을 하겠지만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움직임이나 마음가짐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장치는 되지 못한다는 것이라는 거다.
더욱이 헤드 직타와 돌려차기에 대한 차점 적용도 과연 그것이 박진감을 살려줄까 하는데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지금 경기를 보고 있는데 내 느낌은 전보다 더 못하다는 것이다.
전자보호구 때문에 오심이나 오심에 대한 부담감이나 오심이라는 오명에서는 어느정도 해방되겠지만 경기 내용은 전보다 더 못한 것 같다.
실력 차이가 크다면 현란한 기술들이 나오겠지만 그것은 그 전에도 같았고 점수에서 뒤지는 선수가 부담이 큰 기술들을 구사하는 것도 전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실력이 비슷하거나 메달권에 있는 선수끼리의 경기에서는 우스깡스러운 모습들이 자주 나오고 있는 데다가 서로 기회만 보면서 시간보내고 반격만 하려는 모습은 여전하다.
보는 내가 창피할 정도다.

태권도 경기에서 왜 보호구가 가격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가.
보호구는 말 그대로 다치지 말라고 착용하는 거지 그곳만을 때리라고 착용하는게 아니다.

태권도 경기에서 박진감을 살리려면 경기를 규격화하려고 하지말고 자유롭게 풀어줘야 한다.
다리공격은 경기가 지저분해질 수 있으니 금지하더라도 공격중 다운이나 맞아서 다운이 되도 채점하고 팔을 맞아서 아프다고 기권해도 점수로 계산하고, 정말 다양한 곳에서 점수가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과녁을 정해놓고 싸우라고 시키면 당연히 단조로운 경기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시스템을 그렇게 만들어놓고 선수들에게 왜 경기를 그렇게 밖에 못하냐고 욕을 해서는 안된다.
어차피 격기 투기를 보는 사람들은 점수를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것이고 패자가 어떻게 지는 지를 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태권도 경기는 제발 보호구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유도보다도 더 파괴력도 없고 호신 능력도 떨어진다는 오명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싶다.
태권도는 단지 스포츠일 뿐이라는 보여주기 위한 움직임뿐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보호구가 몸을 보호하는게 아니라 팔로 보호구를 보호하는 모습 정말 그만 보고 싶다.

2012년 8월 6일 월요일

마누라를 안고 싶다

꿈을 꿨다.
가게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입을 약간 벌리고 있는 상태에서 자꾸 무언가가 내 이빨에 부딛히는 것이다.
애써 눈을 떠서 그것이 뭔지 확인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집사람의 장난일 것이 뻔했고 그것이 기분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 그것이 계속되고 좀 아프기까지 해서 뭐냐고 물어봤지만 알려주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만져서 확인해 봤더니 핸드폰으로 내 이빨을 누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랑 집사람은 누운 채로 서로를 보며 그렇게 즐거워하며 웃었고 난 그렇게 꿈에서 깼다.
지금 집사람은 조금 먼 곳에 가 있다.
내 감정이 이럴 줄은 몰랐다.
아무렇지 않게 덤덤하게 기다릴 줄 알았는데 가끔씩 이런 기분이 날 무기력하게 만든다.
집사람이 보고 싶다.
그 장난들을 다시 겪고 싶다.
하루라도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지만 집사람만이 할 수 있고 집사람이 해야만 되는 일이라 전화통화로 빨리 오라고 말하지는 못한다.
어차피 떨어져 있어서 힘든건 집사람이 더하기 때문에 힘들어할 마음에 내가 더 보태고 싶지는 않다.

장미란의 아름다운 퇴장은 성숙한 국민 때문

이번 2012 런던 올림픽 경기를 보면서 나에게 색다르게 다가온 것은 선수뿐만 아니라 해설자 아나운서 국민들까지, 모두가 더 이상 금메달에만 집착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은메달을 따도 동메달을 따도, 2등 3등 또는 누구에게 졌다 라는 생각보다는 수고했다 최선을 다해줘서 고맙다 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그러겠냐만은 그래도 전과는 분명히 달랐다.

나만 하더라도 저번 올림픽 때랑은 분명히 보는 눈이 달라졌고 보는 마음이 달라졌다.

식당에서 장미란의 경기를 봤는데 마지막 170Kg에서 식당 안 사람들은 모두 긴장했고 모두 기대했고 모두 탄식했지만 욕을 하거나 채널을 돌리거나 푸념이나 자적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퇴장하는 장미란을 위해 박수쳐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의 당당한 퇴장을 끝까지 그리고 조용히 지켜봐 주었다.

장미란의 당당한 퇴장이 가능했던 이유는 먼저 경기에 임하는 장미란 선수 본인의 자세가 첫째였고 그녀에게 응원과 위로와 격려를 하는 해설자가 다음이었고 그 말에 수긍하고 금메달이 아닌 장미란 선수라는 사람을 보기 시작한 국민들의 달라진 자세 때문이라고 난 생각한다.

그들은 우리보다 잘해서, 우리들 대신 땀흘리고 노력해서 우리의 대표인 것이다.
메달이 아닌 사람을 보는 지금의 자세가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
다만 져도 좋으니 무기력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무기력한 모습은 이겨도 감동이 없다.

나는 장미란뿐 아니라 메달이 없는 다른 선수들에게도 환영의 메세지를 보내는 국민들이 보고 싶다.
지금의 내 마음은 그렇다.

2012년 8월 3일 금요일

내가 기억하는 몇 가지 꿈들. 예지몽 데자뷰 일화

시골을 떠나 서울 근교로 이사온 지 얼마 안되서 꾼 꿈이다.(내 나이 5~6살 쯤인듯)
온통 하얀 방에 하얀 유령에 하얀 바위가 등장한다.
방들은 문은 없고 아래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며 동그랗고 하얀 큰 바위가 내게로 굴려 내려오는 상황고 다리 없는 유령들이수첩을 들고 싸인을 받기 위해서인지 인터뷰를 위해서인지 내게 몰려 오는 상황이었다.
유령의 모습은 영화 '고스터 바스터'에 나오는 유령의 모습이었는데 그 영화를 보고 꿈을 꾼건지 꿈을 꾸고나서 그 영화를 본건지는 헷갈린다.
그 꿈을 꾸던 당시에 내가 어떻게 되는 줄 알았단다.

초등학생 때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주택에서 세들어 살 때 친척 형이 근처 문방구에서 장난감 총을 사서는 바로 옆 주택 입구 계단에 둘이 앉아서 친척 형이 그 총을 조립해 줬다.
이 때가 처음으로 꿈을 반복적으로 꾼 때이다.
하루에 한 번씩 7일간 꾼 꿈인지 하루에 7번 꾼 꿈인지 총을 실제로 선물받고 꿈을 꾼건지 꿈을 꾸고 총을 선물 받은 건지 꿈만 꾼건지 실제로 선물도 받은건지 아직도 헷갈리는 꿈이다.
그런데 지금 나이를 먹고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때 당시에 실제로 내게 총을 선물해 줄만한 친척 형이 곁에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초등학교 고학년때이거나 중학생 때쯤에 꾼 꿈이다.
아주 작은 단칸방에 어떤 누나와 단 둘이 있었는데 누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 있고 나는 그 누나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누워 있었다.
그리고 누나와 날 향해 아주 작은 창문을 통해서 따스한 햇볕이 쏟아지고 있었는데 정말 따뜻하고 포근하고 편안하고 행복했었다.
그때가 심리적으로 많이 외로웠던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 꿈을 꾸고 나서 한동안 길거리에서 그런 누나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여자들을 유심히 쳐다보면서 등 하교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중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하루에 한 번 이상 심할 때는 7번에서 10번 이상 가위에 눌렸었다.
가위에 눌리는 게 군대에서도 가끔 있었고 그 후에도 아주 가끔씩 찾아오기는 했는데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이 가장 심했었다.
하지만 귀신은 한 번도 못봤다.
누구는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느끼기도 했다는 데 나는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가위에 눌리면 어떻게 해서든지 깨어났기 때문이다.
손가락을 물거나 숨을 참거나 하는 식으로.
그런데 깨어나면 손가락을 문 자국이나 아픔은 없다.
이 역시도 꿈 속에서 행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사이의 어느 날, 한 동안 666과 악마에 대해서, 악마처럼 살아보는 것에 대해서 심취해 있던 어느 날에 아주 심각한 꿈을 꾸었다.
아주 칠흙처럼 어두운 곳이었는데 사방이 어두웠고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어디가 위고 어디가 아래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 곳에서 나는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뒤에서 그 칠흙같이 어두운 그곳보다 더 어두운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형태가 없는 어두움이었지만 살아있는 무언가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것이 악마라고 느낌으로 알 수 있었는데 그것은 나를 데려가려 하거나 나를 악마처럼 만들으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무서움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는데 다른 한 쪽에서 빛보다 밝은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는데 난 그것이 신이라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고 빛보다 밝은 그것(역시 행체는 없었음)을 향해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울면서 잘못했다고 빌었다.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빌었었다.
얼마나 무섭고 실제같았는지 깨어나서도 한 동안 눈물흘리며 울었다.
그 후로는 신을 부정할 용기가 없어져 버렸고 종교를 비판하기는 하지만 신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또한 악마같은 삶이라던지 하는 허무맹랑한 짓도 않한다.


군인이었을 때 외박 신청을 하고 나온 부하들이랑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그런데 술을 먹고 길거리에서 부하 중 한 명이 지나가는 차를 째려봤다는 이유로 싸움이 붙었다.
그 날은 내가 술이 떡이 되서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는데 그 날의 창피함으로 그 날 이후로는 술을 취할 정도로 마시지 않는다.
그런데 그 싸우는 광경을 지켜보던 여자 두 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하얀색 차안에서 쪽지에 차 번호를 적었다면서 우리에게 건내줬다.
신고할 거면 증인해 주겠다는 말과 함께.
하지만 나는 별 일 아니라면서 그들을 보냈는데 사실은 군인 신분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지만 내가 해결하지 못했다는(맞고 있는 부하들을 거의 방치했었다. 왜 상대편 애들이 나는 안 건드렸는지 아직도 의문) 창피함 때문에 그녀들을 돌려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부대에서 몇 일간 미안함 때문에 그 날의 부하들의 얼굴을 못 봤었다.
그런데 싸움 이후의 그녀들과 그녀들의 행동을 이미 꿈에서 이미 봤었다.
사건이 터지고 난 후에야 깨닫게 되는 게 참 아쉽지만 그 날의 일도 기억에서 쉽게 버리지 못해 간직하고 있다.

일을 하면서 알게 된 동생의 결혼식에 갔었는데 결혼식은 교회에서 하고 식사는 다른 식당을 잡아서 했었다.
그런데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그 동생의 아는 형들과 함께 했는데 그 사람들이 식당에 들어가는 뒷모습을 전 날 꿈에서 꿨었다.
예지몽이나 데자뷰가 특별할 건 없었지만 그 꿈(그 현실)은 바로 하루 전에 꾼 꿈이 현실에서 나타나서 나한테는 좀 다른 의미가 있었다.
보통은 짧아도 한 달이상의 시기적인 거리가 유지됐었는데 그 날만 하루 차이로 발생해서 예지몽의 시간 차이가 왜 이렇게 짧아졌나 하고 혼자 고민했었다.

가장 최근에 겪은 데자뷰는 집사람이랑 은행에 갔었는데 그 은행과 은행에서 서류 작성중인 집사람의 모습과 은행의 창문 밖으로 지나가는 여성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집사람도 꿈에 관한 일화들이 있어서 이런 날 이해한다는 것이었다.
그 전에는 그런 이야기들을 말한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은행에서 데자뷰를 이야기했는데(사실 믿어줄 거란 기대도 안 했고 이해할 거란 기대도 없었다) 집사람도 그런 일들을 겪어봤다는 것이었다.
집에 큰 일이 있거나 가족 중 누군가가 크게 다치면 꼭 꿈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 좋은 꿈을 꾸게 되면 항상 불안해 한다고 한다.

다시 중학생 때로 돌아가서 그때는 거의 매일 야한 꿈만 꿨었다.
엎드려 잔다거나 몸을 약간 불편하게 만들고 자면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고 꿈 속에서 절벽같은 곳으로 떨어지면 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꿈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게 되면서 나는 거의 매일 꿈을 꿨고 거의 매 번 야한 꿈만 꿨었다.
그러다 한 번은 내가 슈퍼맨이 되었는데 이상하게 날 수가 없었다.
그 전까지는 꿈 속에서 나는 것에 문제가 전혀 없었는데 이상하게 그 날만은 날 수가 없었다.
그런 상태로 어느 지하의 긴 터널을 걷다가 나왔는데 횡단보도 건너편에 엄마랑 동생이 서 있었다.
그런데 차도에서 수 많은 승용차들이 지나가다가 큰 버스가 한 대 지나갔는데 버스가 지나가고 엄마랑 동생이 없어져 버렸다.
이 꿈을 또 한동안 반복적으로 꿨었다.

글을 적다가 생각이 난 것인데, 한 동안 꿈 속에서 사람의 얼굴을 보지 못했었다.
보려고 하면 꿈에서 깨기 일수였었다.
한 동안 그런 시간들을 보냈었는데 한 번은 평상시처럼 하늘을 날면서 야한 짓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화면이 바뀌더니 내가 차를 운전하고 있었고 차는 어두운 곳을 지나다가 대나무로 만들어진 울타리같은 것을 들이받았다.
그리고는 내 양 옆을 사람의 얼굴들이 지나가는데(두상만, 명함사진 찍었을 때 나오는 어깨선까지)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고 모두가 양복을 입은 중년의 남자들로 모두가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 꿈을 꾸고 나서 한 동안 무슨 뜻인가 하고 고민했었다.


네 멋대로 해라

시청율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마니아를 양산한 드라마.
죽음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 드라마.
그 전의 드라마와는 완전히 달랐던 드라마.
10년이 넘도록 여전히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드라마.

이 드라마 전의 양동근 모습은 시트콤에서의 까불이가 전부였다.
양공주 였는지, 흑인군인과의 성관계로 태어난 혼혈아로 출연한 영화(제목 기억 안 남)에서의 연기를 보면서도 깜짝 놀라긴 했었지만(시기가 드라마 전인지 후인지도 기억 안 남)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에서의 연기를 보면서도 많이 놀랐는데, 내 기억 속에서 양동근은 까불이에서 '네 멋대로 해라'의 고복수의 삶을 살다가 힙합가수로의 삶을 선택한 인물이었다.
그만큼 그에게 영향을 끼친 게 아닌가 싶다.

나에게도 적잔이 영향을 끼쳤었다.
정말 죽음이 내 목전에 있다면 난 어떤 삶을 선택할까.
지금 살고 있는 삶에 만족하고 그대로 살까.
아니면 다른 삶을 선택할까.
지금 나는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정말 많은 생각을 했던 드라마고 많은 것을 느끼게 했던 드라마였다.

지금 집사람의 아버지, 장인어른이 간암으로 수술을 받으셨다.
집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 지 궁금하기도 하고, 내가 이렇게 '네 멋대로 해라'를 적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집사람이 없다면, 엄마가 없다면, 내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어떨까.

참, 이번에 드라마를 다시 보면서 또 한 가지 느낀게 있었는데, 가진 자의 옹졸함과 없는 자의 쿨 함이 그것이다.

고복수를 쫓다가 손가락을 다친 형사는 고복수를 때림으로 쿨하게 복수를 끝낸다.
고복수는 쿨하게 맞는 걸로 용서를 구하고.
고복수의 전 애인 역시도 마지막에 쿨하게 포기한다.
전경의 아버지 어머니, 고복수의 아버지 어머니, 고복수의 친구 의사 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지막에는 쿨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대조적이게 전경의 전 남자 친구만이 끝까지 쿨하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새 여자친구가 생길 때마다 전경 앞에서 자랑하는 그런 모습.

어쩌면 실제 삶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실제 삶에서는 '네 멋대로 해라'가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지금껏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 것에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고 엄청난 희생이 필요한 데다가 그것을 주위 사람들이 쉽게 용인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하기도 하고 때론 어떤 이유에서 자신을 죽이거나 미루고 타인을 위한 무언가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항상 내게 외치는 목소리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네 멋대로 해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을 포기하지 말고 항상 자신을 위해서 살아라.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살아라. 그것이 진정 자신을 위하는 방법임과 동시에 타인을 위하는 방법이다. 자신을 포기하고 힘겹게 사는 것은 자신도 괴롭지만 그것을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들도 괴롭다. 어차피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의 희생이 옆사람 때문이라고 불만을 갖고 있지 않은가. 설령 불만이 없더라도 그 삶을 지켜보는 사람은 너무 부담스럽고 죄스럽게 느끼게 된다. 그러니 네 멋대로 네가 원하는 데로 너 자신의 행복과 즐거움을 위한 삶을 살아라."

이것은 내가 집사람에게 바라고 말하는 삶이다.
이것은 어머니가 내게 바라고 말하는 삶이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어머니에게 바라고 말해왔던 삶이었다.
그럼에도 나도 집사람도 어머니도 그런 삶을 살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가 아직도 내 곁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2012년 8월 2일 목요일

[야설] 경찰관, 찌응을 맛보다

"띵~ 동~"
찌응이 세탁기에서 탈수가 끝난 옷가지들을 꺼내고 있을 때 밖에서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
"경찰입니다."
문 밖의 사내는 당당하면서도 위엄 있는 목소리로 답했다.

"무슨 일로 그러시죠?"
경찰이란느 직함에 찌응은 경계의 눈빛을 보내며 문을 살짝 열었다.

복도에 서있는 사내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이는 경찰 특유의 제복을 입지도 않았고 가죽 자켓도 아니었으며 험상굳지도 않았다.
사내는 찌응이 문을 조금 열자, 바로 자신쪽으로 문을 더 연 후 문의 바닥면에 발을 대어 그녀가 나중에라도 문을 닫을 수 없도록 했다.

"옆집에 도난 사건이 일어난 건 아시죠?"
사내는 찌응이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뇨."
찌응은 약간 당황하고 있었다.

"조사할 게 있으니 협조 부탁드립니다."
사내는 말을 마치자마자 찌응의 허락도 없이 집안으로 들어갔다.

찌응은 옆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왜 자신이 조사를 받아야하는 지 알 수 없었지만 경찰이라는  그의 신분이 찌응으로 하여금 그의 행동을 제지시키지 못하게 만들었다.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가 자신의 집안을 찬찬히 훑어보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문을 닫고 찌응도 거실로 걸어갔다.

"오늘 오전에 어디 계셨습니까?"
사내는 찌응이 자신의 뒤에 있는 것을 느끼며 돌아보지도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청소하고 세탁하고 뭐 그랬는데요."
찌응은 사내가 묻는 말에 대답을 하면서도 자신이 왜 이래야 하는 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누구랑 있었습니까?"
"당연히 혼자 있었죠."
"남편분은요?"
"일 갔는데요."
"그럼 집에 있었다는 걸 증명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네요. 그럼 알리바이 성립이 안된다는 거 아시죠?"
"네? 이 시간에 혼자 있는 게 당연하죠. 그런데 왜 제가 조사를 받아야 하죠?"
찌응은 조금씩 위기감이 느껴졌다.

"다른 분들은 다 조사받고 있는데 혼자 안 받으시겠다는 겁니까?"
".... ...."
"뒤로 돌아 서 주세요."
사내의 말에 찌응은 납득은 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시키는 대로 뒤로 돌았다.
찌응이 뒤로 돌자 사내는 찌응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왜 이러세요. 전 아니에요."
찌응은 자신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지자 당황했다.

"절차대로 조사중이니 가만 계세요."
사내는 말을 마치고는 찌응의 몸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깨와 팔을 따라 만지며 그 안을 조사했고 그 다음에는 등을 따라 손바닥으로 안의 내용물이 브레지어 뿐이라는 걸 알아냈다.
다음으로는 찌응의 허리 전체와 다리 그리고 그녀의 엉덩이도 만져 갔다.

찌응은 사내가 자신의 엉덩이를 만져왔음에도 자신의 무죄를 증명할 방법은 순순히 따르는 것 뿐일 거라고 여기며 가만히 있었다.
사내는 찌응의 엉덩이를 만지고는 치마를 들춰서는 다시 팬티 위에서 그녀의 엉덩이를 만지다 그녀의 팬티를 순식간에 끌어내렸다.

"뭐 하시는 거에요?"
"지금 조사중입니다. 조사중에 느끼시는 겁니까?"
놀란 찌응보다 사내의 목소리가 더 컸다.

"가만히 계세요. 다른 집도 조사해야되니까 빨리 끝냅시다."
사내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사내의 조사는 계속 됐다.
찌응의 팬티를 벗기고는 다리를 벌리게해서 그녀의 사타구니 사이를 들여다보더니 그 안에 손가락을 넣어 휘저었다.

"으~ 응~"
찌응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났다.

"조금만 참으세요. 금방 끝납니다."
사내는 다시 찌응의 그곳을 휘젓다가 무슨 생각에선지 행위를 잠시 멈췄다.

"이리와보세요."
사내는 행위를 중단하고서는 찌응을 침실 쪽으로 이끌더니 침대에 배를 대고 엎드리게 했다.
그리고는 다시 찌응의 다리를 벌리고는 그녀의 은밀한 그곳을 손가락으로 탐구하다가 입을 가져가 침을 발랐다.

"음~~~~"
찌응의 신음소리가 점차 커져갔다.
사내는 찌응의 그곳에 손가락을 넣어 휘젖기도 하고 입을 가져가 빨기도 하면서 그 행위를 반복했다.

"지금 조사중인거 맞아요?"
찌응이 거칠어지는 숨을 참으며 물었다.

"지금 바쁘니까 말시키지 마세요."
사내는 찌응의 그곳을 양 손으로 벌린 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사내는 조사에 만족을 못했는지 혀바닥을 세워 그녀의 항문에 찔러 넣었다.

"거, 거기는 안되요."
찌응은 놀라며 사내를 제지시키려 했다.
사내는 찌응의 말에 혀를 거두고는 그녀의 손목에서 수갑을 풀렀다가 그녀의 팔을 머리 위로 올리게 하고서는 다시 수갑을 채웠다.

"바로 누워보세요."
사내의 말에 찌응은 순순히 따랐다.
사내는 찌응이 바로 눕자 옷을 벗기고는 브레지어마저 벗겼다.
사내는 찌응의 잦가슴에 손을 가져가 만지더니 입을 대어 빨기 시작했다.
그것은 분명한 애무였다.

"지금 조사중인거 맞죠?"
찌응은 서서히 달라오르는 몸과는 달리 머리로는 무죄를 증명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자신을 합리화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사내는 찌응의 물음에 어떠한 대답도 해주지 않고 바지와 패티를 벗어 자신의 물건을 들어내 보였다.

"바지는 왜 벗으세요?"
".... ...."
사내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사내는 갈색을 띄며 당당히 서있는 자신의 물건을 어루만지더니 곧장 그녀의 안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아~"
찌응의 입에서는 한숨 섞인 신음이 흘러나왔다.
사내는 허리를 움직여 방아질을 하면서도 한 손으로는 찌응의 젖가슴을 만지고 입으로는 그녀의 목덜미를 빨면서 본격적인 성교에 들어갔다.

"아~ 남편 오기전에 빨리 끝내주세요."
찌응은 더 이상 자신을 덮치고 있는 이 사내가 진짜로 조사중인건지 아닌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사내가 언제부터 자신에게 흑심을 품은 것인지 아니면 사전에 계획된 일이었는지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다만 찌응은 남편으로 인해 성에 대한 즐거움에 눈을 뜬 시점에서 자신을 달궈주고 자신의 성욕을 채워주고 있는 그가 반가울 뿐이었다.

사내의 격정적인 방아질로 찌응의 올려진 두 팔이 침대 머리맡에 닿더니 이제는 머리가 닿아 부딛히기 시작했다.
쿵 쿵 하는 소리에 사내는 그제서야 찌응의 머리 상태를 보고서는 그녀의 허리를 잡아 거칠게 자신 쪽으로 잡아당겼다.

"아~~~"
허리를 잡아 당김과 동시에 사내가 자신의 물건을 힘껏 밀어넣자 그 충격에 찌응은 교성에 가까운 신음소리를 냈다.
그들의 격정적인 행위는 그칠 줄 모르고 그 열기는 더욱 거세어져 갔다.
사내의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되고 그의 입에서는 거친 숨이 나오기 시작했을 무렵 찌응의 몸짓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나 올 것 같아. 나, 나 이제...."
찌응의 신호에 사내는 있는 힘을 다해 그녀의 허벅지 사이 깊숙한 곳을 몽둥이로 때리듯 퍽 퍽 소리를 내며 방아질을 더욱 거칠게 했다.
사내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마지막을 향해 치달리다 이내 사정감이 몰려오는 듯 보였다.

"나도 이제...."
"안에다 싸줘."
찌응이 재촉했다.
사내는 찌응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그녀의 몸 속에 자신의 온 열정을 폭발시켰고 둘은 동시에 절정을 맛보았다.
사내는 잠시 찌응의 몸 위에 엎드려 휴식을 취하다가 일어나서는 그녀에게 짧은 입맞춤을 해주고 곧장 샤워실 쪽으로 걸어갔다.

"자기야. 수갑은 풀어줘야지."
찌응이 풀어헤쳐진 옷을 그대로 두고서 젖가슴을 들어낸 채 사내에게 말했다.
찌응의 남편인 노마는 그녀를 돌아보며 눈웃음을 짓더니 그대로 샤워실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2012년 8월 1일 수요일

태능선수촌, 예선에서 탈락해도 그들은 국가대표

꿈 속에서 어떤 일을 계기로 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 전 상황 까먹음)
내 주위에는 남자 친구도 있었고 날 좋아하는 여자들도 있었다.
나는 어떻게 운동을 할 까 고민하다가 프로 선수들처럼, 프로 선수들과 함께 운동하는 것이 좋은 방법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두 부류의 선수들을 만나봤다.

한 쪽은 정말 악바리처럼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나와 맞지 않다고 여겼고 다른 한 쪽이 비교적 점잖게 운동을 하고 있어서 그쪽으로 택했다.

실내 체육관 같은 곳이었는데 어떤 선수들의 운동을 따라할 까 구경만 한참 하다가 달라기를 하고 있는 두 사람이 보였다. 한 명은 마라톤 선수처럼 보였고 다른 한 명은 코치이거나 보조해주는 선수같았다.
난 그들처럼 운동을 하기로 하고 피해가 안 가게 그들의 동선에서 벗어나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렇게 천천히 달리다가 땀에 젖어있는 메트리스를 보게 되었다.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있는 다른 한 사람에 의해서 젖어 있고 헤져 있는 메트리스를 보며, 그렇게 땀을 흘렸으면서도 아직도 계속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있는 선수를 보면서 내가 너무 편하게, 내가 너무 우습게 생각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안에서 운동을 한다고 깨작 깨작 거리는 것이 전문 선수들에게 민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공간과 시간을 나에게 양보했지만 나는 그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 몰랐던 것이다.

이러면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실내 체육관을 나와보니 뒤 편 공터에서 전직 프로 선수들이 야구를(재미로) 하기 위해 팀을 나누려고 상의 중에 있었다.
여유를 부리는 자들은 이미 열심히 한 자들이다 라는 생각을 그 광경을 보면서 했다.

그들을 뒤로 하고 앞쪽으로 나가니 친구와 여자가 날 보며 왜 나왔냐고 물었다.

그들은 내가 열심히 해서 그 안에서 다른 선수들과 같이 될 수 있다고 믿었고 그렇게 열심히 할 것이라고 믿었었던 것이다.
나는, 그들은 나와 다르다고 나는 그렇게 될 수 없다고 나는 그렇게 되려는 생각도 없었다고 말하면서 그 자리를 떠나려 했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날 설득시켜 다시 실내 체육관 안으로 들어가게끔 만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나는 끝내 거절했고 그들은 그런 날 보면서 실망했다.

- 올림픽 시즌이라 이런 꿈을 꿨겠지만 내가 가볍게 여기는 것이 어떤 이에게는 절실한 무엇일 수도 있다는 것, 정말 열심히 한 자만이 후일 여유를 부릴 자격이 있다는 것, 나에게 내가 생각하는 그 이상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내가 그 이상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봤다.